얼바인 역사
HISTORY OF IRVINE
배경
로스엔젤레스에서 남쪽으로 50마일 거리에 떨어져있는 얼바인(Irvine)시는 한국의 강남 8학군이라 불리는 교육의 도시입니다. 얼바인에는 4개의 공립고교와 2개의 대안학교, 22개의 초등학교와 8개의 중학교가 있다. 모든 학교들이 고루 API(학력평가지수)가 9~10등급으로 높고, 뛰어난 교육환경 때문에 한국에서 조기유학생들이 많이 몰리기도 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GATE PROGRAM을 통해 영재교육경험이 있는 교사가 우수학생에 대한 선행학습을 실시하고, 초등학교 고학년의 경우엔 성적, IQ 등 다양한 선발기준을 통해 우수학생을 선발, 영재클래스로 묶어 특별지도하는 APPAS PROGRAM을 1980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도 다양한 과목의 Honor 클래스나 AP과목을 통해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이 대학의 학점을 미리 딸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등 우수학생들이 도전할 수 있는 다양한 목표를 마련해두었다.
게다가 얼바인은 넓은 녹지와 잘 정비된 도로와 상가 등 도시 전체가 깨끗하고 쾌적하며, 미 연방수사국(FBI)과 ‘머니’ ‘페어런츠 매거진’등 잡지들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또는 ‘아이키우기에 가장 안전한 곳’으로 선정하기도 한 최상의 도시입니다. 이처럼 학군좋고, 생활 환경이 좋다보니 한인들의 선호도가 높아 이곳에 사는 한인의 수사는 약 24,000명으로 이미 도시 전체의 인구 24만 8,000명의 약 10%에 육박했고, 최근에도 부동산 업계에서 가장 많은 문의가 오는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역사
1864년 제임스 얼바인이라는 사람이 동료와 함께 얼바인 랜지라는 넓은 농장을 사들였습니다. 이 농장은 샌디에고, 오렌지 카운티, LA에 걸쳐있는 1만 2000에이커의 어마어마한 크기로, 오렌지 카운티의 경우 1/4이 이농장의 땅이었습니다. 제임스 얼바인은 1876년 동료의 몫까지 사들이면서 이 농장을 사유화합니다.
1894년 제임스 얼바인의 아들 제임스 얼바인 2세는 The Irvine Company라는 회사를 설립, 이 땅을 관리합니다. 처음에는 주로 농작물을 생산하거나, 가족들에게 풀을 뜯기는 정도의 관리였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LA의 도시 기능이 포화상태에 도달하여 남쪽으로 도시화가 확산되자, The Irvine Company는 이 땅의 새로운 이용을 위해 고용창출과 주거환경, 쇼핑, 교통, 교육, 녹지환경, 위락시설 등 7개 요소를 고려한 마스터플랜을 세워 계획도시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커뮤니티마다 가까이에 학교와 공원, 쇼핑가를 배치했고, 벤치 히니 놓을 때도 위치와 환경을 감안한 철저한 조사와 사전계획을 거쳤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여전해서 비즈니스 업주가 진출하기 가장 까다로운 동네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말 괜찮은 도시’를 만들어보자는 땅 소유주의 의지와 시정부, 상공회의소의 3박자가 잘 맞아떨어져 얼바인은 어느 도시보다도 안전하고 쾌적함을 자랑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또한 The Irvine Company는 주립대학을 새우기 위해 단돈 1달러에 1000에이커의 대지를 기부했고, 그로 인해 미국 내 10대 우수 주립대학으로 성장한 UC얼바인이 탄생해 교육도시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얼바인의 대표적인 비즈니스 중심지인 얼바인 스펙트럼은 ‘북가주에 산호세가 있다면, 남가주에는 얼바인이 있다’는 말을 만들어낸 근원지이기도 합니다. 지난 10년간 컴퓨터 소프트웨어, 무선통신, 생화학, 자동차, 의료장비 등 첨단 업종의 대표 기업들이 꾸준히 몰려들어 시는 인구가 30만명에 달하면 인구유입을 억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